볼리 목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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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리 목사관은 1862년 영국 에식스주 볼리 마을에 건축된 건물로, 1930년대 초자연 현상 연구가 해리 프라이스가 조사하며 유령 저택으로 유명해졌다. 1939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1944년 철거되었다. 1863년경부터 초자연적인 현상이 보고되었으며, 특히 1930년부터 1935년까지 라이오넬 포이스터 부부가 거주하며 약 2,000건의 심령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심령 연구 협회(SPR)의 조사 결과, 이러한 현상들이 조작되었거나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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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 목사관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볼리 목사관 |
원래 이름 | 해당 정보 없음 |
다른 이름 | 해당 정보 없음 |
상태 | 철거됨 |
건물 유형 | 교구 목사관 |
건축 양식 | 고딕 리바이벌 건축 |
주소 | 에식스 주볼리, 잉글랜드 |
착공 날짜 | 해당 정보 없음 |
완공 날짜 | 1862년 |
철거 날짜 | 1944년 |
파괴 날짜 | 해당 정보 없음 |
높이 | 35피트 (10.6미터) |
층수 | 4층 |
면적 | 약 7,500 평방피트 (696.7 평방미터) |
부지 면적 | 11에이커 (4.45 헥타르) |
건축가 | 해당 정보 없음 |
주요 시공사 | 해당 정보 없음 |
수상 내역 | 해당 정보 없음 |
지정 | 해당 정보 없음 |
방 수 | 32개 (침실 11개) |
웹사이트 | 해당 정보 없음 |
![]() |
2. 역사
볼리 목사관은 1862년 에식스주 볼리 마을의 홀 로드에 있는 볼리 교회 근처에 건축되었다.[2] 이 집은 헨리 도슨 엘리스 불 목사가 교구의 교구 목사로 임명된 지 1년 후인 1863년에 이사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3] 이 건물은 1841년 화재로 파괴된 이전 목사관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후 불 목사의 14명 자녀를 수용하기 위해 별관을 추가하여 확장되었다.
목사관은 영국 에식스주와 서퍽주의 경계에 있는 스타우어 강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했다.[16]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유령이 출몰하는 저택으로 유명해졌다. 초기에는 수녀나 마차의 유령이 목격되거나, 아무도 없는데 종소리나 속삭임이 들리는 등의 괴현상이 보고되었다.[16] 특히 1930년부터 1935년까지 라이오넬 포이스터 부부가 거주할 당시에는 약 2,000건에 달하는 심령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16]
1937년에는 초상 현상 연구가 해리 프라이스가 직접 목사관에 머물며 조사를 진행했고, 여러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목사관은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16] 이곳에서 일어난 초상 현상에 대해서는 방대한 양의 기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볼리 목사관은 193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16] 1944년에는 완전히 철거되었다.[16] 건물이 사라진 현재에도 이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2. 1. 전설
볼리 목사관과 관련된 유명한 전설이 있다. 약 1362년, 이 지역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세워졌고, 그곳의 한 수도사가 근처 수녀원의 수녀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의 관계가 발각되자 수도사는 처형당하고, 수녀는 수녀원 벽 안에 산 채로 갇혔다고 전해진다.그러나 이 이야기는 1938년에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목사관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목사의 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수녀를 벽에 가두는 설정은 라이더 해거드의 소설 ''몬테주마의 딸''(1893)이나 월터 스콧의 서사시 ''마미온''(1808)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3. 초자연 현상
볼리 목사관에서 처음으로 초자연 현상이 보고된 것은 1863년경으로, 일부 지역 주민들이 집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발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1900년 7월 28일에는 당시 목사였던 불(Bull)의 네 딸이 해 질 녘에 집에서 약 약 36.58m 떨어진 곳에서 수녀의 유령으로 보이는 형체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들은 말을 걸려 했으나 가까이 다가가자 모습이 사라졌다고 증언했다.[4] 지역 오르간 연주자 어니스트 앰브로스는 불 가족이 여러 차례 유령을 보았다고 확신했다고 후에 언급했다.[4] 이후 수십 년간 머리 없는 기병 두 명이 끄는 유령 마차 등 다양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여러 사람에게서 나왔다. 불 목사는 1892년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 헨리 포이스터 불 목사가 교구를 이어받았다.
헨리 불 목사가 1927년 6월 9일에 사망한 후 목사관은 한동안 비어있었다. 1928년 가이 에릭 스미스 목사 부부가 이사하면서 다시 초자연 현상 보고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초자연 현상 연구가인 해리 프라이스가 처음으로 조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스미스 부부가 떠난 뒤, 1930년 10월에는 리오넬 알저논 포이스터 목사 부부가 입양한 딸과 함께 이사했다. 포이스터 부부가 거주한 1935년 10월까지 약 2000건에 달하는 심령 현상이 보고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16], 여기에는 시종 벨 울림, 물건 던지기, 벽에 글씨 쓰기 등 다양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현상 중 일부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포이스터 가족이 떠난 후, 1937년 5월부터 해리 프라이스가 직접 목사관을 1년간 임대하여 48명의 관찰자들과 함께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했다.[5] 이 조사 과정에서 강령회를 통해 '마리 레르'라는 수녀와 '서넥스 아뮤레스'라는 영의 존재가 주장되기도 했다. 이러한 조사 활동과 언론 보도로 볼리 목사관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의 집 중 하나가 되었다.[16]
볼리 목사관에서 일어난 초상 현상에 대해서는 방대한 양의 기록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목사관 건물 자체는 1939년 화재로 소실되었고[16] 1944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16]. 건물이 사라진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3. 1. 스미스 부부 (1928-1929)
1927년 6월 9일 해리 불 목사가 사망한 후 볼리 목사관은 비어 있었다.[4] 다음 해인 1928년 10월 2일, 가이 에릭 스미스 목사 부부가 이사했다. 이사 직후 스미스 부인은 찬장을 청소하다가 어린 여성의 두개골로 보이는 것이 담긴 갈색 종이 묶음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미스 가족은 전선이 연결되지 않은 시종 벨이 울리거나, 창문에 불빛이 나타나고, 설명할 수 없는 발소리가 들리는 등의 현상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스미스 부인은 밤중에 말 마차를 보았다고 믿기도 했다.스미스 부부는 ''데일리 미러'' 신문에 연락하여 심령 연구 협회(SPR)와의 연결을 요청했다. 1929년 6월 10일, 신문사는 기자를 파견했고, 기자는 볼리 목사관의 미스터리를 다루는 연재 기사를 시작했다. 신문사는 초자연 현상 연구가인 해리 프라이스의 방문을 주선했고, 프라이스는 6월 12일에 도착했다. 그의 방문과 함께 돌, 꽃병 등 물건이 던져지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거울 틀에서 '영적 메시지'가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프라이스가 떠나자 이러한 현상들은 멈췄다. 스미스 부인은 나중에 숙련된 마술사이기도 했던 프라이스가 이러한 현상들을 꾸며낸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고 밝혔다.
결국 스미스 부부는 1929년 7월 14일 볼리를 떠났으며, 교구는 후임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 2. 포이스터 부부 (1930-1935)
1930년 10월 16일, 헨리 포이스터 불 목사의 사촌인 Lionel Algernon Foyster|리오넬 알저논 포이스터eng(1878–1945) 목사와 그의 아내 Marianne|마리안eng(1899–1992), 그리고 입양한 딸 아델레이드가 목사관으로 이사했다.[17] 포이스터 목사는 가족이 이사 온 시점부터 1935년 10월 목사관을 떠날 때까지 발생한 다양한 이상한 사건들을 기록하여 해리 프라이스에게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약 2000건의 심령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16]기록된 현상에는 시종 벨 울림, 창문 깨짐, 돌과 병 던지기, 벽에 글씨 쓰기 등이 포함되었으며, 딸 아델레이드가 열쇠 없이 방 안에 갇히는 사건도 있었다. 마리안 포이스터는 남편에게 자신이 침대에서 내던져지는 것을 포함한 여러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한 번은 아델레이드가 "끔찍한 무언가"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포이스터 목사는 두 차례에 걸쳐 구마 의식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첫 번째 구마 의식 중에는 주먹만 한 돌에 어깨를 맞기도 했다.
''데일리 미러''의 보도를 통해 이 사건들은 여러 초자연 현상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연구자들은 조사를 진행한 후, 마리안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일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마리안은 나중에 일부 사건은 심령 연구원 중 한 명과 공모한 남편이 꾸민 것이며, 다른 일부는 실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하숙인 Frank Phyliss|프랭크 필리스eng(스스로 François d'Arles|프랑수아 달레fra라 칭함)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초자연 현상을 이용했다고 인정했다.
포이스터 가족은 리오넬 포이스터 목사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1935년 10월에 볼리 목사관을 떠났다.
3. 3. 해리 프라이스의 조사 (1937-1939)
포이스터 부부가 1935년 10월에 떠난 후[5] 볼리 목사관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1937년 5월, 초상 현상 연구가 해리 프라이스는 재산 소유주인 앤 여왕 헌납 기금과 1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5] 그는 1937년 5월 25일 ''더 타임스''에 광고를 내고[5] 이후 개인 면접을 통해 48명의 "공식 관찰자"들을 모집했다. 이들 대부분은 학생들이었으며, 주말을 중심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보고하도록 지시받았다. 프라이스는 이곳에 거주하며 여러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로 인해 볼리 목사관은 매우 유명해졌다.[16]1938년 3월, 프라이스의 조력자 중 한 명인 S. J. 글랜빌의 딸 헬렌 글랜빌은 런던 스트리텀에서 플랑셰 강령회를 진행했다. 프라이스는 이 강령회를 통해 두 명의 영과 접촉했다고 보고했다. 첫 번째 영은 자신을 Marie Lairre|마리 레르fra라고 밝힌 젊은 수녀였다. 플랑셰를 통해 전달된 이야기에 따르면, 마리 레르는 프랑스 수녀였으나 종교 단체를 떠나 잉글랜드로 와서 왈데그레이브 가문의 일원과 결혼했다. 그녀는 볼리 목사관 부지에 있던 더 오래된 건물에서 살해당했으며, 시신은 지하실에 묻히거나 사용하지 않는 우물에 던져졌다고 한다. 벽에 쓰여진 글씨 중 하나인 "마리안, 제발 나가게 도와주세요"는 그녀가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고 해석되었다.
두 번째 영은 자신을 Sunex Amures|서넥스 아뮤레스eng라고 밝혔으며, 1938년 3월 27일 밤 9시에 볼리 목사관에 불을 지르겠다고 예언했다. 그는 또한 불이 났을 때 살해된 사람의 뼈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 목사관에서 일어난 초상 현상에 대해서는 방대한 양의 기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목사관은 프라이스의 조사가 진행 중이던 193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16], 1944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16].
4. 화재와 발굴
1939년 2월 27일, 볼리 목사관의 새로운 소유주였던 W. H. 그렉슨 대위가 이사 상자를 풀던 중 복도에서 실수로 등유 램프를 넘어뜨렸다. 당시 목사관에는 가스나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물은 안뜰의 우물에서 길어 사용했다. 이 사고로 불이 빠르게 번져 목사관 건물은 심하게 손상되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한 보험 회사는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것으로 결론 내렸다.
화재 당시 근처 볼리 로지에 살던 미스 윌리엄스는 불타는 목사관 2층 창문에서 유령 수녀의 모습을 보았다고 주장했으며, 해리 프라이스에 따르면 그녀는 이 증언의 대가로 1기니를 요구했다고 한다.
1943년 8월, 해리 프라이스는 폐허가 된 목사관의 지하실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젊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두 개를 발견했다. 이 뼈들은 인근 리스톤의 교회 묘지에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볼리 교구 측에서는 발견된 뼈가 돼지 뼈라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 때문에 장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볼리 목사관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16], 1944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16]
5. 심령 연구 협회(SPR)의 조사 (1948-1956)
1948년 해리 프라이스가 사망한 후, 데일리 메일의 기자 찰스 서튼은 프라이스가 볼리 목사관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서튼은 1929년 프라이스와 함께 목사관을 방문했을 때 머리에 큰 조약돌을 맞았는데, 당시 프라이스의 코트 주머니에서 여러 크기의 돌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6]
같은 해인 1948년, 심령 연구 협회(SPR)의 회원인 에릭 J. 딩월, K. M. 골드니, 트레버 H. 홀 세 사람이 프라이스의 주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중 두 명은 과거 프라이스의 가장 충실한 동료이기도 했다. 조사 결과는 1956년에 볼리 목사관의 유령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프라이스가 일부 현상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7]
"볼리 보고서"로 알려진 이 SPR 연구는 목사관에서 보고된 많은 현상들이 실제로는 조작되었거나, 쥐의 움직임 또는 집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이상한 음향과 같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7] 보고서의 저자들은 "분석 결과, 모든 기간에 걸쳐 유령 현상과 폴터가이스트 활동에 대한 증거는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7] 테렌스 하인스는 1930년부터 1935년까지 목사관에 거주했던 라이오넬 포이스터 목사의 부인 메리앤 포이스터가 유령 현상을 꾸며내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프라이스 자신도 목사관에 머무는 동안 여러 현상을 조작했다고 지적했다.[8]
메리앤 포이스터는 이후 자신이 유령을 본 적이 없으며, 들렸던 소리들은 바람 소리, 집에 초대한 친구들이 낸 소리, 혹은 남편에게 장난치기 위해 자신이 낸 소리였다고 인정했다.[9] 볼리 목사관에 얽힌 많은 전설 역시 꾸며진 이야기였다. 라이오넬 포이스터 이전에 살았던 해리 불 목사의 자녀들은 목사관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도 경험하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살던 집이 영국에서 가장 유령이 많이 나오는 집으로 묘사되는 것에 놀랐다고 증언했다.[9]
한편, SPR 연구자 중 소수만이 프라이스를 옹호했다. 로버트 헤이스팅스가 대표적이며,[10] 프라이스의 유언 집행인이었던 폴 타보리와 SPR 연구자 피터 언더우드 역시 사기 혐의에 대해 프라이스를 변호했다. 1996년에는 이반 뱅크스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11][12] 그러나 1997년 발표된 SPR 보고서에서 마이클 콜먼은 프라이스 옹호론자들이 제기된 비판들을 설득력 있게 반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13]
6. 논란과 비판
1948년 해리 프라이스가 사망한 후, ''데일리 메일''의 기자 찰스 서튼은 프라이스가 목사관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서튼은 1929년 프라이스와 함께 볼리 목사관을 방문했을 때 머리에 큰 조약돌을 맞았는데, 이때 프라이스를 붙잡자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여러 크기의 돌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6]
같은 해인 1948년, 심령연구학회(SPR)의 회원 세 명(에릭 J. 딩월, K. M. 골드니, 트레버 H. 홀)이 프라이스의 주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 중 두 명은 프라이스의 가장 충실한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프라이스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1956년에 ''볼리 목사관의 유령''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프라이스가 일부 현상을 사기적으로 만들어냈다고 결론지었다.[7]
SPR 연구, 일명 "볼리 보고서"는 보고된 많은 현상들이 실제로는 조작되었거나, 쥐의 움직임 또는 집의 구조적 특이성으로 인한 이상한 음향과 같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분석 결과, 모든 기간에 걸쳐 유령 현상과 폴터가이스트 활동에 대한 증거는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7] 심리학자 테렌스 하인스는 1930년부터 1935년까지 목사관에 살았던 라이오넬 포이스터 목사의 아내 메리앤 포이스터가 유령 현상을 꾸며내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프라이스 자신도 목사관에 머무는 동안 여러 현상을 조작했다고 지적했다.[8]
메리앤 포이스터는 나중에 자신이 유령을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녀는 목사관에서 들렸던 소리들이 실제로는 바람 소리, 집에 초대한 친구들이 낸 소리,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남편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 낸 소리였다고 밝혔다.[9] 볼리 목사관에 얽힌 많은 전설 역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오넬 포이스터 이전에 그 집에 살았던 해리 불 목사의 아이들은 집에서 어떤 초상 현상도 경험하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살던 집이 영국에서 가장 유령이 많이 출몰하는 집으로 묘사된 것에 놀랐다고 증언했다.[9]
그러나 모든 연구자가 프라이스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SPR 연구자 중 로버트 헤이스팅스는 프라이스를 옹호한 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다.[10] 프라이스의 유언 집행인이었던 폴 타보리와 또 다른 SPR 연구자 피터 언더우드 역시 사기 혐의에 대해 프라이스를 변호했다. 작가 이반 뱅크스도 1996년에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11][12] 하지만 1997년 SPR 보고서에서 마이클 콜먼은 프라이스를 옹호하는 이들이 제기된 비판들을 설득력 있게 반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13]
7. 대중문화
2017년에는 부분 애니메이션 영화 ''볼리 목사관: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령이 많이 나오는 집''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리시 시어스미스와 조나단 릭비가 출연했으며, 애슐리 소프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14]
2021년에는 장편 영화 ''볼리 목사관의 유령''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스티븐 M. 스미스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줄리안 샌즈, 토야 윌콕스, 콜린 베이커, 크리스토퍼 엘리슨이 출연했다.[15]
참조
[1]
웹사이트
The Ghost Hunters
https://www.imdb.com[...]
[2]
뉴스
Bury and Norwich Post
1862-08
[3]
뉴스
Suffolk Free Press
1862-02-20
[4]
뉴스
Organs and Organists
[5]
서적
World's Greatest Psychics & Mystics
Octopus
[6]
서적
A History of Terror: Fear & Dread Through the Ages
Sutton
[7]
간행물
The Haunting of Borley Rectory
http://www.harrypric[...]
Duckworth
[8]
서적
Pseudoscience and the Paranormal
Prometheus Books
[9]
서적
Bizarre Beliefs
Richard Cohen Books
[10]
간행물
An Examination of the Borley Report
http://www.harrypric[...]
[11]
서적
Ghosts of Borley: Annals of the Haunted Rectory
David & Charles
[12]
서적
The Enigma of Borley Rectory
Foulsham & Co Ltd
[13]
간행물
The Flying Bricks of Borley
[14]
웹사이트
Borley Rectory: The Most Haunted House in England (2017) – EOFFTV – the Encyclopedia of Fantastic Film and Television
http://www.eofftv.co[...]
[15]
웹사이트
The Ghosts of Borley Rectory (2021)
https://kaleidoscope[...]
[16]
서적
超常現象大事典
成甲書房
[17]
서적
世界超能力百科 上
青土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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